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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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自然主義, 영어: naturalism)는 예술과 철학에서 과학의 영향으로 나타난 사상이자 운동이다. 자연주의자는 실제의 사물과 현상을 자연 세계의 범위 안에 있다고 보고,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을 신뢰할 수 없는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극 및 영화, 문학 분야에서 자연주의는 믿을 만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매일의 실제 일상을 작품에 담으려고 하는 운동이다. 이 사조는 주체들이 고도로 상징적이고 이상적이며, 심지어 초자연적이기까지 한 낭만주의 또는 초현실주의와는 정반대 방향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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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문학
영화에서 그렇듯이, 산문의 특정한 형태가 없는 질(質)과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 자연주의는 일반적인 형식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구체적인 시각 이미지와는 반대로, 산문의 경우는 무수히 많은 다른 형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realism)의 파생물이며, 19세기 프랑스와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 두드러진 문학 운동이다.
자연주의적인 작가들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1] 그들은 한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사회적 환경이 결정한다고 믿었다. 사실주의가 주체를 정말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만을 추구하는 반면에, 자연주의는 사실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나 유전 같은 밑에 숨은 힘들을 ‘과학적으로’ 결정하려고 시도한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모두, 주체가 고도로 상징적이고 이상적이며 심지어 초자연적이기까지 한 취급에 영향을 받는다는 낭만주의에 반대한다.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은 자주 거칠고 욕망에 가득한 주체의 문제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에 마음에 스며드는 비관주의와 함께, 성적 욕망에 솔직함을 드러낸다.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은 도덕적 타락을 비롯하여 배신, 질병, 편견, 인종 차별, 빈곤 같은 인생의 어두운 잔혹성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개 비관주의적이었고 자주 지나친 우둔함을 비판했다.
[편집]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2] 이를테면 자연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졸라가 이론상으로는 자연주의이지만 작품의 성과 측면에서는 사실주의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고, 플로베르는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기도 하면서 자연주의의 선도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두 사조가 완전히 흡사한 것은 아니어서 아우어바흐(Berthold Auerbach)가 스탕달과 발자크의 사실주의를 언급하면서 플로베르의 사실주의와 완전히 대조되는 경향이라고 한 데서 드러나듯이 사실주의 안에서 일정한 구분의 필요성이 있는 문학적 경향으로서 자연주의가 사용되었다.
즉,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일부로 간주된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틀 안에서 유전적·환경적 영향을 강조하는 사조라고 이해하면 구분이 쉽다. 대부분 이 둘을 혼용하거나 오해하기가 쉽다.
[편집] 19세기 프랑스
1860년대부터 비평가가 문학을 논할 때 ‘자연주의’를 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못했고, 주제를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찾거나 실제 삶에서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작품에 그대로 담는 작가들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비난조로 사용되었다. 자연주의자 작가들의 다수가 낭만주의의 과잉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과학적이며 백과사전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듯 정밀함을 자신들의 소설에 도입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에밀 졸라는 그의 소설 《제르미날》(Germinal)을 쓰려고 여러 석탄 광산을 몇 달에 걸쳐 방문했고, 플로베르는 당대에 역사적인 세부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시대에 텐(Hippolyte Adolphe Taine)이 이러한 자연주의 사상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였다. 그는 모든 인간 존재가 그/그녀가 사는 시대의 환경과 유전의 힘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믿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자연주의 운동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러시아 작가들에게 충격적인 영향을 주었다.
기 드 모파상이 그의 스승이자 정신적인 멘토인[모호한 표현] 플로베르의 사실주의를 명확하게 본받으려 했음에도, 그의 단편소설은 대개 ‘자연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모파상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유행한 괴기·공포 소설(gothic novel)에서 유래한 요소들을, 《오를라》(Le Horla) 같은 작품에 사용하였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대 세계의 어두운 모습을 묘사하는 데 따르는 긴장, 객관적인 풍자(irony)와 낭만적인 이미지의 사용, 그리고 주제들은, 상징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자연주의는 에밀 졸라의 소설들과 가장 연관성이 높다. 특히 그의 《루공 마카르 총서》에 실린 소설들이 그러하다. 《제르미날》, 《목로주점》, 《나나》, 《파리의 배》, 《인간 야수》, 《걸작》에서, 그는 가족이 분가한 후 일어나는 사회적인 성공 또는 실패를 물리적이고 사회적이며 유전적인 원칙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다른 작가로는 알퐁스 도데, 쥘 발레스(Jules Vallés), 조리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후에 데카당파의 문인으로 자연주의에 반대하였다), 에드몽 드 콩쿠르와 그의 형제인 쥘 드 콩쿠르,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폴 부르제(Paul Bourget)가 있다.
[편집] 독일
19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이 희곡 분야에서 자연주의 사상에 따른 작품을 썼다.
- 이 부분의 본문은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입니다.
그의 출세작이자 독일 자연주의 연극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해뜨기 전》(1889년)으로, 이 작품은 자연주의의 원칙을 따라 유전과 환경이 극 중 인물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연극에서 벼락부자가 된 주인공 크라우제의 둘째 딸인 헬레네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회학자 로트에게 버림을 받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로트가 헬레네를 버린 이유는 그녀의 집안이 알코올 중독자 집안이기 때문이었다.[3]
[편집] 이탈리아
루이기 카푸아나는 이탈리아 작가이고 언론인이며 진실주의 또는 자연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그는 지오반니 베르가와 동시대 인물로, 둘 다 카타니아 지방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는 또한 프랑스 작가이자 자연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에밀 졸라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다. 카푸아나는 또한 시를 시실리아어로 썼다.
[편집] 미국
미국에서는, 문학의 장르가 대개 연합되어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케이헨(Abraham Cahan), 엘렌 글래스고(Ellen Glasgow), 데이비드 그레이엄 필립스(David Graham Phillips), 잭 런던(Jack London) 같은 작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 크게 두드러진 작가는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 그리고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이다. 자연주의의 시대가 주로 사실주의와 짝을 이루어 진행되었고, 1870년대와 1880년대에, 특히 사실주의의 양식이 정립되었을 무렵에 그러했다. 이때 윌리엄 딘 하우얼스(William Dean Howells)와 헨리 제임스(Henry James)가 같은 무리에 소속되었다.
미국 문학에서의 자연주의와, 19세기 말엽에 프랑스에서 꽃을 피운, 자연주의로 알려진 장르 사이에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에밀 졸라로 예시되는 프랑스의 자연주의는, 계획적이고 잘 정의되어 있으며, 자아-의식적으로 자유의지 개념을 거부하는, 일관성 있는 소설(fiction) 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이론은 그 자체가 오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에만 충실한 것이며, 졸라가 했던 것처럼 “신경과 피”에 따라 결정되는 인간이 하는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특별히 노리스와 런던을 포함한 많은 미국 자연주의자가 졸라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다만 그들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설명하려 했을 때, 그들에게는 회의적이기는 하나 최소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일관성 있는 문학 운동을 조직하지 않았으며, 우발적으로 나타난 그들의 비판적이고 이론적인 성찰이, 철학 체계로서의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졸라가 개별 양식을 뛰어넘어 당대에 벌어진 논쟁에 시금석 역할을 했어도,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지는 작가는 발자크인 것처럼, 아마도 미국 작가인 드라이저가 자연주의 작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문학에서 자연주의가 최고로 이해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이론이 도입된 초창기이다. 철학과 장르의 용어로서, 미국 자연주의가 정의되려면 훨씬 느슨하게 개념을 설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1870년대와 1880년대에 걸쳐 나타났고, 그 영역이 주제 면에서 성(sexuality)과 폭력, 중산층 또는 “지방의 향토적인” 것에 제한되었던, 사실주의 소설에 대한 견해와 다르지 않다. 이 견해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자연주의 소설은, 성장하던 미국 도시들에서 민족적으로 두드러지는 거주자이며, 그들 대부분이 이민자로 중산층 밑의 빈곤 계층에 속했던, 비(非)앵글로색슨 계열 사람들에 자주 집중했다. 자연주의자들이 산업화 과정에 있던 미국 도시에 처음으로 관심을 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1880년대와 1870년대에 세련된 사실주의적인 도구들을 현실을 재현하는 데에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케이헨은 그가 속했던 뉴욕 동부의 유대인 공동체를 작품의 배경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재현하려고 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에서, 큰 아들과 유럽 중앙에서 온 두 번째 이민자 세대로 예시되는 것은 많은 독일과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의 모습이었다. 프랭크 노리스와 스티븐 크레인은 많은 경우에 환원적이고 공격적인 사회의 고정관념을 매개로 작품을 썼지만, 그들 스스로는 중산층 영어 사용자 집안에 대도시에서 여러 민족 출신들로 이루어진 집안 출신이었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자연주의의 주류로부터 좀 더 멀리 떨어진, 엘렌 글래스고의 사실주의는, 데이비드 그레이엄 필립스가 “문제 소설들(problem novels)”이란 연작에서 시도한 남부의 신화화에, 분명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전형적인 매음 소설인 1917년작 “수잔 레녹스: 그녀의 몰락과 부흥(Susan Lenox: Her Fall and Rise)”은, 하류층을 대상으로 그들이 지닌 미덕(virtue)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들은 중산층의 삶을 묘사한 사실주의 소설이 보여주는 부르주아의 개인주의 개념에, 회의적이거나 철저히 반대했다. 대부분의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이 동물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동기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때로 성(sexuality)과 폭력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다. 이 대목에서 그들은 자신들과 한 쌍을 이루는, 프랑스 자연주의자들과 두드러지게 다르다.
[편집] 철학
거칠게 말해서, 자연주의는 가설을 세우고, 예측하고, 실험하고,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식의 과학적 방법만이, 진실을 규명하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관점이다. 자연주의가 일반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현상이나 가설들을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모든 현상이나 가설들이 같은 방법으로 연구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은 반드시 존재하고 자연적인 현상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또한 일부의 자연주의자들은 그 자체의 개념적인 구분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실재와 자연적인 실재 사이의 구분을 인정하기도 한다. 누군가 초자연적인 실재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있을 때, 자연주의자들은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자연적인 실재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 자체가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범위 내에 있는 지식을 얻는 과정이나 그 어떠한 조사의 방법이나 물질적인 접근들과 설명들은,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많은 근대의 과학철학자[4][5]가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나 ‘과학적인 자연주의’같이 과학적 방법에서 오랫동안 효력을 지닌 규약을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방법론적인 가정으로, 초자연적인 개념들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오직 자연적인 원인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효과들이 가장 잘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존재론적 자연주의’(ontological naturalism) 또는 ‘형이상학적인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로 알려진 접근을 반대한다. 그런 접근은 우주를 포괄하는 자연 세계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믿음들이 모두 실제로 존재한다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주의 철학에 접근하는 방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분은 과학을 지지하는 철학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서 진화론에 맞서 일부 사람들이 제안한 창조론 또는 지적 설계가 ‘과학적인 물질주의’ 또는 ‘방법론적인 물질주의’로서의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와 연관되며, 그것을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함께 융합시키기도 한다.[6] 창조론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현대 과학이 무신론적이라는 단언을 이용하며, 의사 과학(pseudoscience) 또는 유신론적인 사실주의를 지지하기도 하고,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환영하는 자연 철학을 되살리는 식으로 자신들이 이룩한 접근과 현대 과학을 대조하기도 한다.
[편집] 역사
철학적 자연주의의 이론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이오니아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이었다. 특별히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가 처음으로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원인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했다. 초기 그리스 철학에 대한 조너선 바르네스(Jonathan Barnes)의 소개는 이러한 초기 철학자들을, 자연주의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경험적인 원리에 따라 자연을 연구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근대적인 중요성을 파악하기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12세기 르네상스가 진행되는 동안에 나타난 중세 스콜라 철학자의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중세 시대 후반기에 자연현상 연구는 기독교 자연철학자들의 작업으로 대표된다. 비록 그 연구들이 연구자들의 특성상 직접적인 신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주 자연 과학의 설명보다 기적에 더 현혹되는 당대 사람들의 우매함을 경멸하곤 했다. 파리 대학의 성직자 장 뷔리당(Jean Buridan)은 “아마도 중세시대 예술에서 가장 뛰어난 대가”라고 묘사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특이한 천문현상을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믿는 일반인들의 잘못된 습관과, 철학자들이 하는 “적당한 자연적 원인”에 대한 조사를 대조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이었던 14세기 자연철학자 니콜 오렘(Nicole Oresme)은, 자연의 여러 놀라움에 대해 논의하면서 “천국이나, 연약한 자들의 피난처나, 또는 악마들을 의지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원인이 그러한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하느님이 그 결과들을 직접 만드셨다고 믿는 쪽을 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훈계했다.
자연의 자연주의적인 연구를 위한 열정은 16~17세기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이 이 세계를 운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흔히 이차적인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찾는 데 관심을 집중하면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철학을 앞장서서 촉진시킨 사람 중 한 명은 이탈리아의 가톨릭교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자연이 “결코 그녀를 규제하는 법칙에 따른 일정한 기간을 위반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7]
아이작 뉴턴이 그의 물리학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습니다.”(Hypotheses non fingo)라고 응답했다. 비슷하게, 라플라스는 천체의 역학에 대한 그의 이론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가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계몽주의 시대 동안에,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철학자들과 볼테르는 자연 세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초자연적인 힘을 제거하자고 호소하기 위해 필요한 철학적 정당화의 윤곽을 그렸다. 뒤따라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당시 최고조에 달한 근대 생물학과 지질학의 발달 과정으로부터 여전히 남아 있었던 유신론의 잔재를 대부분 제거하게 된다. 그 당시 발달한 생물학과 지질학은 널리 퍼져 있었던 기독교의 창조 신화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거부하였다. 4세기 동안 과학적 연구는 실험과 이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그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결코 초자연적인 설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물론 과학 실험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몇몇 특별한 현상에 대해서는 계속 순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이론이 지닌 그 자체의 권리로서의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강력한 구조이다.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는 용어로 나타나는 이 접근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로날드 넘버스에 따르면, 이 용어는 미국 일리노이 주 휘튼 대학의 철학자이었던 폴 드 브리에스(Paul de Vries)가 1983년에 만들었다. 드 브리에스는 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학문으로서의 방법으로, 그가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고 부른 것과,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라고 부른 것을 구분하였다.[8] 다른 의견에 따르면,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1937년부터 에드가 셰필드 브라이트만(Edgar Sheffield Brightman)이 사용해 왔다. 그는 The Philosophical Review에 실은 글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자연주의’와 대조하여서 그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생각이 최근에 이루어진 구분보다 정말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9]
1996년부터 책과 논문을 통해 계속, 로버트 T. 펜녹은 과학적인 방법이, 초자연적인 존재의 존재 여부를 추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적인 설명을 제한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또한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이 필립 E. 존슨 같은 창조론자나 지적 설계론의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도그마적인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였다. 전문가로서 펜녹이 한 증언[10]은, 판사가 키츠밀러 대 도버 지역 학교 선거구 소송에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가 오늘날 과학의 기반이 되는 규칙이라는 결론을 내릴 때, 인용되었다.[11]
창조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넘버스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지지해 왔다고 기록했다.
| “ | 때때로 과학적 자연주의를 신이 없는 세계를 구성하는 데 사용하는 불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재까지 강한 기독교의 지원으로 유지되어왔다. …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과학적인 자연주의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의 영역을 넓게 만들어 왔다. 그것이 비록 종교적인 믿음을 부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때때로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습관적으로 자연적인 원인을 통해 그의 종말을 이룩하는 신을 믿는 기독교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번창했다.[12] | ” |
[편집] 인식론으로서의 자연주의
W. V. 콰인은 자연주의를 자연과학 그 자체보다 진리를 위한 더 높은 법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방법보다 더 나은 것은 없고, 추상적인 형이상학 또는 인식론 같은 “첫 번째 철학”을 위한 어떠한 여지도 없다. 그런 철학은 과학 또는 과학적 방법을 정당화하거나 과학이 무엇인가를 입증한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그 자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발견을 사용하는 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또한 과학의 주장이 근거가 없고 혼란스럽거나, 모순될 때는 서슴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철학의 방식은 과학과 연관된다. 자연주의는 과학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식의 근대적인 관점 같은 도그마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 대신 그것은 간단히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그런 과정들이 현대 과학이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들이다.
[편집] 철학적 비판
칼 포퍼는 자연주의를 귀납적 추론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그가 귀납 이론에 대해 가한 일반적 비평에 기초하여 자연주의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추측을 발명해 내는 데 나타나는 그것의 유용함은 인정했다.
| “ | 때때로 과학의 귀납이론이라고 불리는 자연주의적인 방법론은, 의심할 수 없는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 나는 자연주의적인 관점을 거부한다. 그것은 비판 능력이 없다. … 그것의 지지자들은 그들이 사실을 발견했다고 믿었던 때는 언제나 그것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약속을 제안해 왔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자칫하면 도그마로 변하기 쉬운 것이다. 이 자연주의적 관점에 비판은 그것이 지닌 의미의 기준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닌 과학적 아이디어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경험적인 방법을 통해 내놓은 결과에 대한 것까지 포함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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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포퍼(Karl R. Popper),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Routledge, 2002), pp. 52~53, ISBN 0-415-27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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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대신에 경계 설정을 위한 반증가능성의 규범을 제안했다.
포퍼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동시대 철학자 앨빈 플랭팅가는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진화론적인 논쟁”에서 진화론적인 자연주의는 논리에 일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과학과 신학 뉴스〉[5]에서 그는 키츠밀러 소송의 결론을 공격하고, “과학”이란 용어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우리 세계에 대하여 진리를 발견하려는 목표를 지닌, 하나의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기획이며,
- 그것은 중요한 경험적 연관성을 지닌다. 이런 애매한 상태에 놓이는 어떤 활동도 과학에 포함된다.
그는 “만약에 당신이 과학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것을 축출시켜 버린다면,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으며 초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세계 또는 어떤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편집] 창조론과 지적 설계
창조론의 지지자들은 초자연적인 행위의 가능성이 지금 과학의 이론이나 실천에 따라서 불필요하게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지적 설계의 제안자들은 지능의 결과로서 자연 세계의 특정한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연주의적인 실재 개념이 과학에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의 일반적인 비판은, 자연 세계가 유신론 또는 초자연적인 개입으로부터 독립적이어서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게 닫혀 있는 체계라는 식의 주장이, 과학을 부정확한 결론으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유신론이나 초자연적인 개입과 관련된 주장들에 대한 연구를 부적절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명제가 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실험되고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라면, 그것은 그 명제가 애초에 모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방법론적 초자연주의자들에 의해 초자연적인 것이기를 중지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과학이 어떤 것이 발견되기 전에 그것이 발견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실험할 수 없고, 측정 장치가 발명되고 새로운 발견 과정이 가능해질 때까지 그러하다. 그러나 과학의 정통적인 신념에 따라, 실재를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것을 허락받기 위하여,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무엇인가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누군가가 종사하는 것은 허락되어야만 한다. 그 명제가 진실이라면, 연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비과학적인 것”은 과학적인 것이 된다. 다른 관점에서, 지식은 종교의 도그마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되지 않고, 유물론적 패러다임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 이런 견해는 과학과 문화를 위한 센터(Center for Science and Culture)같이 ‘지적 설계’의 입장을 취하는 견해의 제안자들이 갖고 있다. 그들의 웹사이트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가 초자연적인 것을 포함하지 않아서 과학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방법론적인 자연주의”가 과학에 대한 폭력을 행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과학을 위해서 표준적인 원리로 정의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13]
[편집]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정의
[편집] 형이상학적인 자연주의와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대조
형이상학적인 자연주의는 자주 ‘철학적인 자연주의’ 또는 ‘존재론적인 자연주의’로 불리며, 자연주의에 대한 존재론적인 접근을 취한다. 존재론은 존재에 대해 연구하는 형이상학의 분과이며, 그래서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강한 무신론이 뒤따르게 된다.
대조적으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는 스티븐 D. 샤퍼즈만(Steven D. Schafersman)의 말에 따르면, “그것을 온전히 믿거나 수용하는 또는 전혀 믿지도 수용하지도 않는 것으로, 과학적인 방법에서 철학적인 자연주의를 선택하고 가정하는 것이다. … 과학은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그것의 성공을 위해서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궁극적인 진리를 수호하지도 않는다(비록 과학이 형이상학적인 함축을 지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자연주의는 과학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전략적이고 작업 가설적 성격을 반드시 수용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도 자연주의가 궁극적 진리인지에 대해서 불가지론자가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며, 자연을 거기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인 것처럼 여기면서 연구해야 한다.”이다.[14]
[편집] 초자연주의(신앙)와의 관계
펜녹(Pennock)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15] 초자연주의의 대리인과 힘은 “자연 세계와 그것의 대리인과 힘 위에 있거나 그것 모두를 넘어선다.” 그리고 “자연법칙의 강제를 받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대리인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만약에 우리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해하려고 자연적인 지식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말뜻에 따라, 그 힘은 초자연적일 수 없다.” 초자연주의가 우리에게 항상 신비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것은 과학적 형태로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기반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실험은 관찰과 다양한 변수의 통제를 요구한다. … 그러나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실재와 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측정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게 과학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과학자의 임무를 의미 없게 만드는 일이며, 과학이 진보를 이끄는 분야라는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희곡 작가들이 곤경에 처한 영웅을 구하기 위해 극에서 기계 장치의 신(deus ex machina)에 의존하는 것처럼, 매우 불만족스럽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종류의 자연주의는 그 말뜻에서 자연적인 실험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존재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른 과학 철학자들은 몇몇 초자연적인 설명이 원리에 따라 측정 가능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지 간에, 자연주의에 대한 거부는 오직 실천적인 문제이어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자와 존재론적 초자연주의자가 동시에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면, 자연 과학자들이 그들의 과학 연구에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를 따르는 동안에, 그들은 또한 신을 믿고 있을 수 있다(존재론적인 초자연주의).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 초자연주의로 간주되어 왔던 것을 연구하는 데서 나오는 지식을 배제하지 않지만, 만약에 어떤 한 현상이 과학적으로 실험되어 자연스럽게 설명되더라도 그것을 초자연적인 사례로 간주한다.
[편집]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지지자들
과학적 방법의 지지자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효율적이고, 강력하다.”라고 말한다.[16] “성공적인 연구를 촉진시키며”(promoting successful investigation)[17] “자연적인 우주에 대한 연구에서 필수적인 관점에 해당한다.”[18] 그들은 또한 과학의 역사가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의 진보”를 보여준다고 본다.[19] 이런 지지자들은 창조주의의 대안을 “명백하게 무효이고 반생산적이다. … 자연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 중에서 말이다.”라고 평가한다.[16]
2005년에 벌어진 키츠밀러 대 도버 지역 학교 선거구(Case of Kitzmiller v. Dover Area School District) 소송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키츠밀러의 비망록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11] 미국 연방 법원 판사인 존 E. 존스 3세(John E. Jones III)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가 오늘날 과학의 기반이 되는 규칙”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판결은 미국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맥락에서 나온 연방 법원 판례가 되었고, 비망록에서는 초자연적인 설명에 반대하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과학과 연관된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의 증거로 더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편집] 미술
미술에서 자연주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제의 사물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19세기 사실주의 운동은, 낭만주의에서 주체를 일정한 양식에 일치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데에 대응하여, 자연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많은 화가가 여러 세기에 걸쳐 유사한 접근을 해오고 있었다. 자연주의에 해당하는 예를 하나 들면, 미국의 화가인 윌리엄 블리스 베이커(William Bliss Baker)가 그린 풍경화를 들 수 있다. 자연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대목은, 삶에 대한 다윈 이론의 관점과 자연의 힘 앞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이다.
자연주의는 르네상스 초기부터 시작되었고,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자체적으로 발전하였다. 조토 및 보티첼리,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피렌체 학파(Florentine School)가 그 예이다.
예술 양식에서 자연주의는 세밀한 부분까지 매우 정확하게 그리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편집] 연극
연극에서 자연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1900년~1914년)에 걸쳐 발전하였다. 그것은 극적 영역을 통해 실재의 완벽한 환영(幻影)을 창조하고자 시도하는 연극을 가리킨다. 이러한 연극 무대에서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눈으로 보는 현실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본다. “사실적”이라는 표현은 관객이 보는 인물, 장소, 사건을 이루는 연극 요소에 적용된다.[20] 이것은 찰스 다윈이 말한 환경의 역할이, 인간을 다룬 연극에 반영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3차원적인 무대 장치를 설치하며, 일상에서 사용하는 구어체를 대사로 쓰고(시보다는 산문과 유사함), 세속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으며(유령이나 영혼이나 잡귀들이 인간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는다), 주체에 배타적인 초점을 맞추는데 현재적이고 고유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낸다(이국적인 모습이나 다른 세계의 모습, 환상적인 장면, 역사적이지 않고 신화시대에 해당하는 모습 등등은 없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사회적인 계층도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된다. 고전극에 나오는 귀족, 왕자, 공주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결국 노동자 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기 스타일은 실제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다시 재창조해 내는 시도를 하는 쪽으로 변화해 간다. 때때로 이러한 스타일의 연기는, 역할과의 완벽한 동일시를 추구하고, 주어진 환경에 관한 이해를 중시한다. 이와 관련된 새로운 연기법은 다윈주의의 영향이 연극에서 드러난 것이며, 스타니슬랍스키가 이 연기법의 형성과 발전에 공헌하였다.[21]
[편집] 자연주의적 연극에 대한 비평
자연주의적 연극은 20세기에 들어서 배우이며 연출가이자 작가로서 활동하는, 연극인(Theatre practitioner)의 모든 주역에게 비판 받았다. 예를 들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밑에 있는 것을 결정하는 것에 주목하는, 진정한 초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실재의 겉모양이 그려내는 환상을 찔러서 구멍 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주의적인 연극이 관객을 ‘허구’에 몰입하도록 고무시키는 것 대신에, 연극이 직면한 것 이면에 담긴 사실과 문제점을 명확히 나누어 생각할 수 있도록 되풀이하여 깨우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접근 방식은 자연주의로부터 시작된 비판적인 기획을 한층 발전시켰다. 그것은 근대적인 사실주의(Modernist realism)의 형태이다.[22] 또한 일부 연극 예술가는 사실주의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좀 더 연극다운 표현, “열린 무대, 무대 장치의 최소화, 소도구, 조명 효과, 어떤 형식을 갖춘 소리나 움직임, 관객의 참여까지” 시도하였다.[23]
자연주의적인 연극은 때때로 다른 스타일의 희곡을 공연하기에는 부적합하였다. 특히 오래된 형태들과 또한 여러 20세기에 창작된 자연주의 계열이 아닌 희곡이 그 예이다. 구체적인 예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그 대사가 지닌 일정한 리듬의 하부 구조에 대한 엄밀한 주의를 요구하고, 자주 길고 복잡한 어구가 나타난다. 자연주의적인 배우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현대극에서 하듯이 좀 더 짧게 대사를 수정하여 구사한다. 그런 구사는 청중이 대사를 이해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대사의 리듬을 파괴한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연기자가 맡은 배역을 통해서 관객과 자연스럽고 직접적이며 종종 새로워지는 “접촉”을 의도하고 있다. 무대와 관객 사이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제4의 벽’이 있음으로써,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극작술이 만들어 낸 연극 기법적이고 극적인 실재의 복잡한 층들을 독점한다. 그러한 좋은 예가 바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제5막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이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시저의 손에 당할 굴욕을 염두에 둘 때, 나오는 대사이다. 그 대사는 비꼬고 조롱하는 듯 모습을 과장되게 꾸미는 방식으로 그녀의 운명을 드러낸다. “나는 매춘부의 모습으로 내 위대한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이 징징 울어대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And I shall see some squeaking Cleopatra boy my greatness in the posture of a whore”) 이 대사를 연극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년이 말하는 것은 극의 흐름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순수한 자연주의적인 방식에서 이 대사는 복잡하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24]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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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SA 2006년 3월- Re: 방법론적인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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